사찰음식의 발달

작성자
templefood
작성일
2015-02-05 13:31
조회
554

의례히 유서 깊은 산사에는 전통 있는 음식이 있게 마련이어서 옛날부터 궁중음식과 사찰음식은 우리의 특수 음식으로 쌍벽을 이루어 왔다.

 초기 불교의 수용은 왕실에 의해서였고, 왕실의 보호에 힘을 입어 발전 하였다. 불교가 신앙으로서 한반도에 자리 잡으면서 그에 따라 음식도 유래되었고, 불교가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토속신앙을 배척하지 않고 감싸 안았듯이 사찰음식 또한 고유한 한국 토속 음식과 섞이어 발전하게 된다. 맨 처음 사찰음식은 불교가 공인 되면서 왕실의 보호 속에서 궁중음식과 만나게 되었고 호국적이고 귀족적이었으며 귀복적(祈福的)이던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오면서 ‘정치적 탄압에 의해 위축된 수난’을 맞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 민중들에게는 불교가 유일한 종교적 위안과 용기를 주면서 전통 종교로서의 명맥을 이어오게 되었고 승려들은 대개 기를 들고 법고, 꽹가리, 징 등을 울리면서 마을을 방문, 염불로 가복(家福) 권선하면서 민중을 교화 하였다. 그리고 점차 대중 속으로 파고들면서 전 시대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어 갔다. 이와 같이 불교가 왕실종교에서 민중종교로 전개된다. 사찰음식 또한 궁중음식과의 만남을 바탕으로 평민들의 민속음식과 접하면서 좀 더 토속적인 분위기를 갖추게 된다.

사찰음식은 그 사회의 문화적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불교가 전래된 이후 살생을 금지하는 계율에 의거하여 채식위주와 사찰음식이 많이 발달 하였다.

 고려시대 불교가 더욱 융성해지면서 식물성식품을 맛있게 먹는 법을 연구하다보니 기름과 향신료 이용이 많아졌다. 육식을 절제하는 계율을 바탕으로 쌈․국․무침 등 채소음식과 특히 채소 저장음식인 절임, 침채류(나박김치, 동치미 형태)가 개발될 수 있었다. 또한 밀가루나 쌀가루를 기름, 꿀, 술로 빚어 기름에 지지고 튀기는 유밀과가 유행했다. 이것은 불교의식 중에서 헌다의식(獻茶儀式)의 발달과 더불어 다과문화로 발달하였다.

 조선시대 들어서 유교가 숭상되면서 불교의 차 문화는 쇠퇴하였으나 여전히 식생활 문화는 불교의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경향이 많았다. 일제 강점기 때의 일본 사람들은 우리 고유의 사찰음식을 연구하고 스님들이 드시는 약초인 산초와 재피 등을 이용하여 다양한 식품과 약품 등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서구화된 식품산업과 외식산업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식품이 각광을 받으며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사찰음식이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사찰에서도 음식의 재료가 달라지고 공양주가 바뀌면서 전통적인 사찰음식을 유지하지 못하는 환경에 직면하고 있다.